[번역]Kazuo Shinohara 2G N58/59 Tranlation into Korean Part02


2G N58/59
Kazuo Shinohara 
CASAS Houses

Kazuo Shinohara : 
beyond Styles, beyond Domesticity
Enric Massip-Bosch

카즈오 시노하라 :
스타일을 넘어서, 주거분야를 넘어서

한국어 번역 Part02






2. 내 의견으로는, 카즈오 시노하라의 작품이 현대 일본 건축과 해외에 미친 영향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매우 잘못 이해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그의 초기 작품과 후기 작품 사이의 명백한 차이점으로 인해 그의 작품은 2개의 경향으로 나뉘어져 정반대의 시각으로 이해되어 왔다. 즉 그의 경력 초기 작품들은 전통적 가치를 재구성한 것(이 방식이 서구에 큰 영향을 끼쳤다)으로 보고, 그 후로 경력 마지막까지는 관습으로부터 벗어난 것(이 방식의 작업은 일본 젊은 건축가들에게 힘을 발휘했다)으로 각각 보아온 것이다. 각각의 시각은 서로 조화할 수 없는 것으로 봐서, 한 입장을 취하면 나머지 한 입장은 무시되곤 한다. 이러한 상반된 시각은 카즈오 시노하라 스스로 구축해서 수년간 성공적으로 유지된 폐쇄적인closed 설명 체계interpretation system에 기인한다. 시노하라 스스로가 자신의 작품들을 공통된 특징과 공통된 시기에 속한 것들로 분류한 뒤,이를 스타일의 시퀀스 sequence of styles로 설명한 것이 그의 작품과 그의 작품들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내러티브recurrent narrative를 이해하는 규범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그의 작품들을 단순히 읽는 노력이 경감되기는 했어도 작품의 통합된 이해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시노하라가 출판물에 작품 사진과 드로잉을 사용한 방식은 그가 제공한 설명방식의 영향력을 키웠다. 사진은 건축을 특정 시간에 고정시키고 이상화 시키는 속성을 가졌다. 카즈오 시노하라는 결국 건축은 사진이 표상하는represent 것으로 이미지가 고착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어서, 적은 수의 동일한 사진을 반복적으로 출판에 사용했다. 마치 건물의 현실reality은 (자신이 제시한 사진으로 표상된) 단 하나 밖에 없는 것처럼 여기며 스스로 건물의 현실을 구축construct 한 것이다.
유사하게, 작품을 출판하거나 전시할 때 그는 거의 항상 같은 설명문을 사용했다. 이 지점에서 그의 작품 세계 구축은 그의 작품 자체만큼이나 그의 글과 사진, 드로잉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스스로 설정한 자신의 작품 설명방식(=sequence of styles) 자체가 그의 작품과 본질적으로 동일체consubstantial로 볼 수 있다면, 단순한 기술description을 피하려는 사람이라면 그가 제시한 방식을 그대로 써서는 안된다. 사실, 그의 작품이 갖는 새로운 가치를 조명하려는 사람이라도 시노하라가 설정한 자기 참조적인self-referential 이 설명 방식을 피한기는 어려운 일이다.
내가 보기엔 시노하라가 스스로 부여한 설명방식이나, 앞서 언급한 두가지 상반된 시각 모두 시노하라 건축 디자인이 가지고 있는 의미의 다중성multiplicity of meanings을 제대로 평가하고 있지 못하다. 더욱이, 이들 이해 방식으로는, 시노하라 스스로가 스타일에 기반해 설명을 했더라도, 그의 경력 초기부터 이들 의미(의 다중성)들이 동시simultaneity에 함께 보여왔다는 사실에 부합하지 못한다.
그래서 시노하라 건축 디자인 과정과 그의 특정한 연구 목적을 이해하기 위한 대안적인 방법으로, 서로 다른 시기에 지어진 서로 다른 프로젝트 간의 긴밀성과 유사성을 판별하여 (시대나 스타일의 구분 없이) 통합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이라면 납득이 될 것이다.
조금은 간략하지만 카즈오 시노하라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여기서 제시하고 싶은 가설은, 카즈오 시노하라의 작품은, 그의 작품 및 글에서 첫 작품부터 나타난 두가지 극단의 방식을 조화시켜 주거 공간의 중심에 감정을 불러 일으키려는 노력endeavor을 끊임없이 해온 것으로 볼수 있다는 것이다. 이 두가지 극단의 방식은 다음과 같이 서로 중첩되는 이중성의 짝들로 표현할 수 있다. 도시의urban/주거의domestic, 신성한sacred/세속적인profane, 형식의formal/비형식의informal, 질서order/혼돈chaos. 위와 같은 노력은 시노하라 작품 모두에 편재하지만 이들이 잘 조화된 예는 시노하라 경력의 정점에 있는 몇몇 주택 프로젝트에 집중함으로써 포착할 수 있다. 계속 하기 전에 시노하라의 글 저작이 갖는 특징을 알아보는 것 또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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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노하라는 그의 경력 초기부터 디자인만큼이나 글을 많이 쓴 건축가이다. 글쓰기는 그의 활동 중 매우 중요한 측면으로 건축에 대한 그의 건축적 고찰reflection은 2가지 특성nature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프로젝트이고 하나는 글(가끔 에세이의 형식으로)이다. 그러나 잘 알려진대로, 그리고 시노하라 디자인의 추상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의뢰받지 않은 작업이나 스스로 부여한 작업을 통해서, 또는 디자인과 무관한 일반적인 이론적 텍스트를 통해서 사고를 발전시키거나 표현하는 사색적이거나 이론적인speculative 건축가는 아니었다.
반대로 그의 건축적 사상을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실, 그리고 현실의 복잡성을 마주해야만 했고 마주함으로써 가능했다고 보인다. 즉 시노하라 작업의 관심은 그 프로젝트가 지어진다는 사실 즉 물질화된 아이디어materialized ideas가 된다는 사실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물질화를 통해 프로젝트 원래 컨셉이 갖는 날카로움과 대담함을 유지하고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시노하라의 글은 일본 건축계의 공통된 논의 주제와 거리가 있었다. 일본 건축계는 출판되는 이슈들보다 다소 수사적인rhetoric 주제들을 다루곤 했다. 시노하라는 글을, 어떤 프로젝트에 의미있고 유용한 고찰을 끌어내기 위해 보통 개인적인 경험으로 시작했다. 이는 거의 대부분 시공이 완료되고 나서 이뤄졌다. 이들 글은 시노하라 작업에 나타난 두가지 다른 종류의 고찰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그는 일본 건축의 전통과 도시 조건urban conditions에 대한 글을 썼다. 이런 글은 그의 경력 초기, 특히 그가 박사논문 “The study of spatial composition in Japanese architecture” 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던 시기 전후에 많이 나타난다. 물론 이런 초기의 관심과 주장은 스스로의 디자인을 위해 진행한 주된 연구였던 일본적 건축요소에 대한 연구와 관련이 있었다. 1963년의 글에서 그는 “전통은 창조를 위한 출발점일 수는 있으나 돌아와야 할 곳은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그가 가진 전통에 대한 관심은 현대건축의 영역으로 도약하기 위한 도구적인 성격임에 틀림이 없다.
시노하라가 주거 건축에 집중했음에도 그의 경력 초기와 경력 마지막, 그리고 디자인을 더이상 하지 않게 되었을 때 모두, 도시와 도시 조건의 다양한 측면들에 대한 글을 썼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은 중요하다. 즉 처음부터 그는 그가 집중한 두가지 기본적인 이슈, 즉 주택과 그 안티테제로서 도시를 완전히 다 다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그의 작품들을 단순한 시기 구분으로 읽는데서 벗어나 연속체continuum로 읽는 시도를 해볼 또 다른 이유가 된다.

시노하라 글의 두번째 카테고리는 그의 디자인 근간을 구성하는 아이디어를 탐구하는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글들은 시노하라가 소급하여 자신의 디자인을 설명하는 글과 스스로의 아이디어 전개과정을 이해하려는 글들을 포함한다. 이러한 자기 참조성self-referential은 사실 모든 일본 예술가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나타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시노하라에겐 이 사실이 매우 핵심적이다.

프로젝트를 처음 매거진에(거의 항상 신건축이었다)소개할 때마다 아티클을 쓰는 것은 시노하라의 특징 이었다. 즉 이론은 디자인 과정에서의 고찰 순간과 프로젝트의 시공 과정에서 얻은 경험 모두를 통해 정립된 것이다. 이런 방식은 시노하라 같은 고도로 개념적인 건축가에게서 예상되는 것과는 상반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직 현실과의 타협을 통해서만, 정말로 강력하고 일상 생활에 영향력 있는 이론을 만들어 낼수 있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구조적이든 기능적이든 예산에 있어서든 실제의 요구를 마주함으로써 이론은 사물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드러나고 의미있게 된다고 봤다.

이런 경우 아티클들은 보조적인 내러티브를 구축하기 위한 절차라라고 보이겠지만 사실 이들은 보조적인 내러티브 그 이상이다. 시노하라에게 있어서 이들 아티클은 단지 정당화의 과정이 아니었다. 디자인 과정에 대한 비이성적 접근, 즉 직관적인 접근을 이성적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1967년 이 점에서 중요한 시점이 왔다. 시노하라가 전해에 지어진 작품들과 함께 수록한 “Theory of Residential Architecture”를 출판한 때이다. 시노하라가 42세 때였고 Tokyo Istitute of Technology에서 박사 학위 논문이 통과되었고, 1966년에 디자인하고 지어진 House in White 와 House of Earth를 포함하여 여남은 개의 작은 주택들을 완공한 때였다.
그는 이 매우 긴 분량의 에세이를 다음과 같은 대담한 주장으로 시작했다. “ 나는 내가 디자인한 주택이 지구상에 영원했으면 좋겠다.” 이는 일본의 주거 건축(사실은 거의 모든 일본내의 구조물)이 재료적으로 취약fragile하고 시간에 대한 저항성이 없어 오직 재건축reconstruction을 통해서만 해결되는 지경인 현실을 통해 얻은 지혜에서 시작된 주장이었다.

이 주장은 또한 소위 메타볼리스트Metabolists이 이끌던 주류와의 논쟁도 맞닥뜨렸다. 메타볼리즘에게 있어 공간은 쓰고버릴수 있고disposable 변화시킬수 있고changable, 도로와 구조물, 덕트 같은 생명의 정수juice가 끊임없이 흐르는 거의 영원할 것 같은 인프라스트럭처에 부착될 무엇이었다. 메타볼리스트들이 세계를 향해 표명한 글을 보면 “우리는 인류 사회를 생명 과정vital process으로 본다 - 우주를 영원히 형성formation하고  발전development시키기” 영원함permanence 대vs 영원한 변화permanent change. 이렇게 주류 건축계와 반대의 입장을 취함으로써 시노하라는 자신의 입지를 만들어 스스로의 직관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메타볼리스트들 또한 마주하고자 하며,결국 현실에 대한 대안적 독해법을 구축하게 한 똑같은 현실과 관계가 있었다. “나에게 있어, 단순히 완전한consummation 공간을 만드는 것에는 조금의 관심도 없다. 단지 이 이유 하나로, 나는 영원히 지속되는 공간의 형태로 영속하는 물건을 만드는 것으로 귀결되게끔 나의 작업metier 동안 선택해 왔다.” 고 같은 아티클에서 시노하라는 밝혔다. 그리고 이런 선택의 바탕은, 그가 몇년 뒤 밝힌 것과 같이, 윤리적인 것이었다.  “나는 거주자들이 현대 기술 사회의 영향력이 무섭게 성장하는 것을 마주하는 하는 현실에서, 소형 주택의 공간에 표현될 때 무엇이 거주자들에게 정신적 위안을 줄수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과격한 입장을 취해 왔다.” 즉 시노하라는 인간이 현기증 나는 현대 생활에서 스스로를 분리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필요성을 본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분리는 만족스럽지도 않고 수월하지도 않았다. 이는 필연적으로 거주자가 스스로 이런 필요성을 자각하거나 필요성을 느끼는 마음 상태여야함을 조건으로 하기 때문이다.


4. 추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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