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dcrafted modernism'이라는 말로 60-70년대 건축물들을 설명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며칠 간 맴돌았는데, 국민대 박길룡 (명예)교수의 책 '한국 현대건축의 유전자'[2005, (주)공간사]에서 정확하게 같은 용어가 쓰였음을 찾아냈다.
'02 모더니즘의 보습 - 폐허 위의 삘딩문화' 챕터의 소제목으로 '모더니즘을 손으로 빚기' (원문에는 '빗기'로 오기되어 있음)라는 용어를 쓴 것이다.
이 문구를 읽었던 것이 기억에 남아 'handcrafted modernism'이라는 단어 조합을 떠올렸을 지도 모를 일이다.
박길룡 교수는 1950년대 한국 전쟁 이후의 한국 건축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해당 용어를 쓴 것으로 이 블로그에서 주로 기록하고 있는 건축물들보다 시기적으로 이르다.
하지만 우리의 건축 문화/기술이 1950년대 ~ 1970년대에 걸쳐 현격한 차이를 보일 정도로 발전하지 못한 것을 고려하거나, 서울과 지방의 격차, 경제발전의 정도 등을 생각하면 같은 개념을 60-70년대 건축물에 적용하지 못할 것은 없다.
특히 분명히 목도하듯이 70년대 말에 지어진 (소규모) 건축물들도 말그대로 여전히 손으로 빚어내는 형국이었기 때문에 하등의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해당 책에서 박길룡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p.32
모더니즘을 손으로 빚기
이렇게 1950년대 한국의 건축은 재건의 책무와 모더니즘의 보습이라는 두 가지 지게를 양 팔에 지고 작업할 수 밖에 없었다. 우선 소규모의 설계 생산력을 가진 개인 사무소들이 먼저 휴전 공간에 다시 자리를 잡아 간다.
......(중략)
민간 부문의 건축이 어느 정도 활기를 찾으면서 무너진 벽돌더미를 걷고 모더니즘이 도시를 채워간다. 그러나 이러한 재건 현장에서 모더니즘의 보습 과정은 공업화가 뒷받침 되지 못한 채 수공으로 때움질 하던 사정이다. 그리고 이렇게 우격다짐으로 체득하는 습관은 이후 한국의 모더니즘을 허약하게 한다.
......(중략)
p.33
이러한 상황에서 1950년대 모더니즘은 나름대로 수단을 찾는다. 콘크리트와 조적조를 조합하는 로우-테크로 가능한 건축 조형을 찾는 구법과 재료의 제한이라는 환경에서 한국의 합리주의는 격자조형을 전형성으로 갖는다.
......(후략)
P.49
청량리 부흥주택(서울, 1957)...(중략)......은 국군 공병대의 지원으로 이루어지는데 모든 건설 요소가 부족하지만, 건설 인력 하나만 넘쳐났다. 장비와 자재는 부족하지만 풍부하였던 인력 자원은 간혹 경제적인 아이디어를 낳는다. 시멘트 블록을 찍을 때 적당한 돌덩이를 하나씩 집어넣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시멘트와 골재를 절약할 수 있고 맹숭맹숭한 콘크리트 표면에 꽤 강한 질감의 인상을 얹게 했다.
.......(후략)
1950년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벽돌과 콘크리트 뿐(p.35)'이었기 때문에 열악한 상황에서도 건축가들은 점차 국제주의 건축 등 세계 건축사조에 동조하는 작업 결과물도 내놓았으나 박길룡 교수는 이를 '양의 경제가 지배하면서 도시는 국제주의의 아류(p53)'로 채운것에 불과하고 '건축 기술의 뒷받침이 부족한 조건에서 모더니즘은 하나의 댄디즘이나 마찬가지(p.47)'라고 평한다.
당장의 재건이 시급한 상황에서는 건축사조와의 공명보다도 '맨손으로라도 블록을 쌓는 일이 더 시급(p.47)'했기 때문이다. 이런 시급함은 '한국 모더니즘 시기를 지배하는 양의 경제 문화'에 '충분한 빌미(p.52)'가 된다. 아류와 댄디즘의 결과도 우리 건축 역사라면 이 빌미도 우리의 건축 역사일 것이다.
이런 시급함은 전쟁 직후에서부터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기가 오기 전까지는 도처에 널려 있는 우리의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 시급함 속에 지어진 건축물들은 여전히 대다수의 도시에서 중요한 삶의 터전이다. 즉 당시와 같은 시급함은 현존하지 않을 지 몰라도 그로 말미암은 현실은 여전히 진행형인 것이다.
기록을 빙자해 남의 삶의 터전을 기웃거리는 행위는, 그 도저한 현실에 속하지 않는 한가로운 제 3자의 회고적이고 낭만적인 (악)취미 정도로 치부될 수도 있겠다. 이 지점에서 위에서 말한 진행형이라는 사실은 큰 빌미가 된다.
60-70년대 열악한 상황에서 긴급하게 지은 주택들과 그 이후 80년대 또다른 긴급함으로 우후죽순 들어선 다세대/다가구들은 우리 도시의 아픈 손가락이다. 일반적으로 이 시기 건축물들은 우리 도시의 열악함을 상징하는 건축물들로 인식되고 빨리 없애거나 개선해야 할 것으로 바라본다. 당연히 삶의 질 측면에서 그런 필요가 긴요하겠지만 그런 관점 외에도 달리 바라볼 가능성이 있음을 기록을 통해 보이고 싶다. 그 곳의 삶은 진행형이며 도시 환경의 일부라는 사실도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십수년 또는 몇십년 전 지어진 건물들 뿐 아니라, 근래에 지어지고 있는 다세대/다가구의 대부분도 여전히 도시 환경을 해치는 해악으로 보는 사람(건축가)이 많은 것을 보면 도시 환경을 만드는 기본적인 사회적 합의가 여전히 없는 현실이다. 사실 그 옛날에서 그다지 많이 나아가지 못한 사회에서 사는 것이다. 이제 겨우 handcrafted modernism의 시대에서 벗어났을 뿐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애시당초 그런 합의라는 것이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이런 가운데 주변에 현저한 도시 건축 현실을 몇 십년에 걸쳐 부정만 하고 있는 것이 우리 도시 건축에 무슨 소용일까
건축 문화는 하이엔드 문화로서 건축과 일상으로서의 건축 두 축이 함께 굴러가야 한다고 본다(monumental architecture vs vernacular architecture). 건축은 태생적으로 엘리티시즘에 기대기 쉽지만 우리 사회는 그 치우침의 정도가 심했고 여전히 심하다. 뒤쳐지고 지진한 국내 건축 현실을 앞에서 끌고가야할 시대적 소명이 건축가들에게 있다고 믿어왔고 여전히 대부분의 건축가가 믿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런 소명이 다하지 않았고 바꿔가야 할 현실 또한 여전한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한 축 또한 언제까지 방기할 수 만은 없다.
1950년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벽돌과 콘크리트 뿐(p.35)'이었기 때문에 열악한 상황에서도 건축가들은 점차 국제주의 건축 등 세계 건축사조에 동조하는 작업 결과물도 내놓았으나 박길룡 교수는 이를 '양의 경제가 지배하면서 도시는 국제주의의 아류(p53)'로 채운것에 불과하고 '건축 기술의 뒷받침이 부족한 조건에서 모더니즘은 하나의 댄디즘이나 마찬가지(p.47)'라고 평한다.
당장의 재건이 시급한 상황에서는 건축사조와의 공명보다도 '맨손으로라도 블록을 쌓는 일이 더 시급(p.47)'했기 때문이다. 이런 시급함은 '한국 모더니즘 시기를 지배하는 양의 경제 문화'에 '충분한 빌미(p.52)'가 된다. 아류와 댄디즘의 결과도 우리 건축 역사라면 이 빌미도 우리의 건축 역사일 것이다.
이런 시급함은 전쟁 직후에서부터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기가 오기 전까지는 도처에 널려 있는 우리의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 시급함 속에 지어진 건축물들은 여전히 대다수의 도시에서 중요한 삶의 터전이다. 즉 당시와 같은 시급함은 현존하지 않을 지 몰라도 그로 말미암은 현실은 여전히 진행형인 것이다.
기록을 빙자해 남의 삶의 터전을 기웃거리는 행위는, 그 도저한 현실에 속하지 않는 한가로운 제 3자의 회고적이고 낭만적인 (악)취미 정도로 치부될 수도 있겠다. 이 지점에서 위에서 말한 진행형이라는 사실은 큰 빌미가 된다.
60-70년대 열악한 상황에서 긴급하게 지은 주택들과 그 이후 80년대 또다른 긴급함으로 우후죽순 들어선 다세대/다가구들은 우리 도시의 아픈 손가락이다. 일반적으로 이 시기 건축물들은 우리 도시의 열악함을 상징하는 건축물들로 인식되고 빨리 없애거나 개선해야 할 것으로 바라본다. 당연히 삶의 질 측면에서 그런 필요가 긴요하겠지만 그런 관점 외에도 달리 바라볼 가능성이 있음을 기록을 통해 보이고 싶다. 그 곳의 삶은 진행형이며 도시 환경의 일부라는 사실도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십수년 또는 몇십년 전 지어진 건물들 뿐 아니라, 근래에 지어지고 있는 다세대/다가구의 대부분도 여전히 도시 환경을 해치는 해악으로 보는 사람(건축가)이 많은 것을 보면 도시 환경을 만드는 기본적인 사회적 합의가 여전히 없는 현실이다. 사실 그 옛날에서 그다지 많이 나아가지 못한 사회에서 사는 것이다. 이제 겨우 handcrafted modernism의 시대에서 벗어났을 뿐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애시당초 그런 합의라는 것이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이런 가운데 주변에 현저한 도시 건축 현실을 몇 십년에 걸쳐 부정만 하고 있는 것이 우리 도시 건축에 무슨 소용일까
건축 문화는 하이엔드 문화로서 건축과 일상으로서의 건축 두 축이 함께 굴러가야 한다고 본다(monumental architecture vs vernacular architecture). 건축은 태생적으로 엘리티시즘에 기대기 쉽지만 우리 사회는 그 치우침의 정도가 심했고 여전히 심하다. 뒤쳐지고 지진한 국내 건축 현실을 앞에서 끌고가야할 시대적 소명이 건축가들에게 있다고 믿어왔고 여전히 대부분의 건축가가 믿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런 소명이 다하지 않았고 바꿔가야 할 현실 또한 여전한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한 축 또한 언제까지 방기할 수 만은 없다.
다행히 이제는 그래도 우리 문화(건축 뿐 아니라 문화 전반)를 열등감 없이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본다. 비로소 우리의 모더니즘을 남의 손을 빌지 않고 이룰 수 있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모더니즘의 형식이 아니라 그 정신을 생각한다면). 일종의 문화적 자신감이라고 한다면 열악하더라도 우리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여 논의의 장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까지 포함하는 자신감일 것이다.
여건이 안돼 말 그대로 '손'으로 빚어 모더니즘의 형식을 흉내 냈었다면, 이제는 우리 '손'으로 직접 우리 시대의 모더니즘을 만들어 갈 두 개의 축을 비로소 제대로 세울 수 있지 않을까
그 기대와 희망이 마음을 움직인다.
참고/ '한국 현대건축의 유전자'[2005, (주)공간사]는 2015년 '한국 현대건축 평전'이란 제목으로 개정증보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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