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teness by Peter Eisenman and Elisa Iturbe

 







Lateness by Peter Eisenman and Elisa Iturb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20


아이젠만은 이 작은 책에서 자신의 주관심사인 비평적/비판적(critical) 건축을 위한 하나의 아이디어를 lateness 라는 개념으로 제시한다. 건축의 비평적 계기로서 lateness의 가능성은 책의 처음 부분에서부터 중간 중간, 그리고 맨 마지막에까지 강조하는 부분이다.

서구 건축(문화 일반도 마찬가지지만)의 발전 양상은 전(前)시기(thesis)를 부정하며(anti-thesis) 새로운 형식 규칙을 창안하는(synthesis) 방식으로 이루어온 변증법적, 대립적, 길항적(dialectic), 선형적(linear) 발전의 역사인데, 이런 반대와 대립의 방식을 통한 선형적 발전을 가정하는 일반의 비평에 대한 대안으로서 제시하는 핵심 아이디어가 lateness다.

선형적 발전 개념은 특정 시대/시기와 특정 건축 형태를 결부associate시키게 되는데 이미 이룬 것들을 발전을 위해 반대하고 부정할 대상이 아니라 convention으로서 이해하고 포용한 뒤 이 것들을 시대의 시간성이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시간대를 섞어 배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아이디어다.

아도르노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베토벤 말년의 음악들에서 고전적 음악의 규준을 지키면서도 하나의 단일한 음악 형식으로 환원할 수 없는 파편적인 형식들이 공존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아도르노는 이 환원할 수 없는 부분들을 late한 부분이라고 명명하였고 아이젠만은 여기서 따와 lateness라고 변형하여 건축에 적용하였다.

포스트모던처럼 역사주의적 회귀를 통하지 않더라도 특정 시대의 뉘앙스를 품는 건축 형태들 사이에 그와 어긋나는 건축 형태들을 도입함으로서 비평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lateness가 표현된 몇가지 건축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Adolf loos 에서는 명확한 시대적 차이를 보이는 형태적 요소가 한 건물에 공존하고 전시대와 뒷세대의 건축 경향의 중간적 성격들이 공존하는 데서 lateness의 가능성을 본다. Villa Karma는 정방형/9분할 평면의 고전적 주택의 외곽을 당시로서는 현대적 건축물로 감싸며 증축한 주택인데 이로 인해 고전적 요소와 현대적 요소가 태생적으로 공존하는 건물이 되었다. 어느 한 시대의 건축물로 규정할 수 없는 성질의 건축물이 된 것이다. 여기서 더 나가 Villa Muller등에서 구현한 raum plan의 개념을 고전적 공간구성에서 현대적 공간 구성으로 이행해가는 중간적 단계로서 설명하는데 이러한 성질로 인해 이 주택들을 어느 한 시대의 건축물로 규정할 수 없는 성격으로 설명된다.

Aldo Rossi에서는 강한 고전적 질서에 상반되는, 그리고 역사적 형태와의 결부를 거부하는 원형적 도형(primary shapes)의 사용에서 lateness의 성격을 본다.

Heijduk에서는 시기가 다른 두 프로젝트의 비교에서 비변증법적(non-dialectic) 비평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아이젠만이 lateness로 규정하는 이 형태들은 시간적으로 모호하고 모던이나 포스트모던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역사성에서도 자유롭고, 선형적 발전개념에서도 자유롭고, 어떤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lateness라는 개념으로 새로운 건축 형태를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서(건축으로 비평/비판하는 것이 목표라서)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데 몰두하는 디지털 프로세스에 대해서도 선형적 역사 발전의 최신 버전으로 읽을 뿐이며 비평성을 상실한 디지털 프로세스에 대해서는 도구적이라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또한 새로운 건축 형태를 만들기 위한 건축가의 변덕스럽고(capricious) 주관적인(subjective) 형태 의지 보다는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적 convention을 알고 이들이 갖는 형태적 관계들을 interrogate 하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시대의 convention을 완전히 무시한 채 추구하는 맹목적 새로움(novelty)과는 명확히 선을 긋고 기꺼이 시대의 표현들을 품는다. 시대의 표현들과 (시간적으로) 어긋나는(lateness) 표현들을 통해 현시대의 표현들에 대해 질문interrogate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태도다. 결과로서 건축은 형태적으로 완전히 새롭지 않지만 비평적으로는 새롭다고 표현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책의 큰 미덕 중 하나는 아이젠만이 자신의 관점에 따라 각 건축가들의 건축물을 분석적으로 다시 드로잉한 도판들이 이해를 보다 직관적으로 이끈다는 점이다. 아이젠만의 전작 중 하나인 '포스트 모던을 이끈 열 개의 규범적 건축 : 1950-2000(Ten Canonical Buildings: 1950-2000)'에서도 두드러졌던 방법론이다. 이 도상적 비평에 대해서는 시각적 정보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건축가들에게 지나치게 편의적 방법론이라고 일부 비판적 시각도 있는 모양이다.(어디선가 읽었는데 출처를 기억하고 있지 못하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입장에는 글의 이해를 쉽게 도와준다는 확실한 장점이 있고 직접 방문하지 못하는 건축물들의 전모를 도판으로나마 상세하게 이해하게 한다는 더 확실한 장점이 있어 단점이 특별히 부각되지는 않는 방법론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단순히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들을 다루는 데서 나아가 분해하고 분석하고 시대적 맥락을 이해해야만 보이는 것들을 밝혀낸다는 측면에서는 적절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방법론이라는 문제와 별개로 '포스트 모던을 이끈 열 개의 규범적 건축 : 1950-2000(Ten Canonical Buildings: 1950-2000)'과 이 책 'Lateness'는 연작으로도 이해될 만큼 비슷한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전작에서는 이 책의 핵심 아이디어인 'lateness'의 전조라고 이해될 만한 아이디어인 'undecidability-비결정성'이라는 개념을 중심에 놓고 모던 건축에 대한 이단적 혹은 위반적이라고 할 만한 건축적 표현들을 담지한 건축물들을 다루고 있다. 전작인 '포스트 모던을 이끈 열 개의 규범적 건축 : 1950-2000(Ten Canonical Buildings: 1950-2000)'에 대한 간단한 리뷰도 예정하고 있다.


다시 'Lateness'로 돌아오면, 이 책은 작은 책이지만 우리의 건축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많은 책이다.

서양 건축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룬 것이 적고 역사가 얕은 건축의 현실에서 끊임없이 앞만보고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있는 우리 건축 문화에 대한 성찰을 요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풍요해진 외관에 비해 비평할 것이 없는 건축계의 풍토를 한탄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모래위에 지은 누각처럼 언제든 근본 없이 무너질 것 만 같은 건축 문화의 얄팍함을 읽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얕음 혹은 얄팍함의 원인 또한 누구나가 다 알고 있으나 누구 하나 제대로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적지 않은 사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서양 문화/역사 발전개념에서 lateness라는 개념은 명확한 함의를 갖는 데 비해 우리의 건축 문화 혹은 문화 일반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는 큰 의미를 만들어 내기 힘든 개념임이 사실이다. 우리 현실에서 lateness라는 개념으로 틈을 낼, 어긋 낼 현실의 건축/문화의 convention이 무엇이냐를 정하는 것부터가 난망하기 때문인데 이 부분이 우리 건축문화가 처한 문제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공통으로 가치를 부여할 만한 우리 시대의 건축 문화는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가 없으며, 합의를 위한 시도 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개별 건축가들이 개별적으로 새로움novelty을 창안하기 위해 밤은 샐 지언정 공통적인 현실에 대한 연구도 고민도 전무하다시피한 것이 우리 건축 현실의 두께를 이리 얄팍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다.

무엇보다 여전히 변화하는 시대를 읽지 못하고 철지난 모더니즘적 가치에 필요 이상의 무게를 두고 있는 건축가들의 양태를 보고 있노라면 완전히 다른 의미에서 시간성의 혼동을 느낀다. 여전한 새로움 창안의 아이디어는 다름 아닌 모더니즘 핵심 가치다. 아이젠만의 무시간성temporal discontinuity과 이러한 시대착오anachronism는 완전히 다르다. 게다가 이런 태도가 교조적으로 까지 흐른다면 그 차이는 더욱 심각해진다. 특정 건축 양태를 그것도 철지난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건축 양태를 우위에 두고 사고하는 건축 풍토는 끊임없이 자기반성을 전제로 하는 비평적 태도와 채울수 없는 간극을 사이에 두고 있다.

아직은 조금 이른 감이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 건축계도 20세기 내내 고군분투하며 생산해낸 건축물들을 기반으로 조금은 뒤를 돌아볼 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룬 것들에서 의미들을 발굴하고 미래의 건축을 위한 공통의 자양분으로 삼을 만한 것들을 합의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공통의 것들에 틈을 내는 작업들에도 조금은 더 의미를 둘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의미를 찾아가기도 전에 여전한 전면적인 재개발의 광풍으로 쓸려나가는 것들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기는 하다. 항상 백지화시키고 새로 시작하는 이 방식이 끝이 나야 무엇이라도 제대로 시도해 볼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만들어질 것인데 자본의 논리로 돌아가는 현실 세계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조건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젠만의 이야기가 우리에게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매우 초-현실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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